전 세계는 지금 탄소중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흐름에 가장 앞장서야 할 탄소 배출 상위국들, 미국과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들의 정책은 단순한 국내 문제를 넘어, 전 지구적 협력체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1. 미국의 석탄 회귀, 과거로의 퇴보
2025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석탄 산업 부활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이미 국제사회가 합의한 기후 목표와 충돌하는 매우 공격적인 조치입니다.
행정명령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석탄을 “전략 광물”로 재분류해 연방 지원을 가능하게 하고,
- 70여 개 발전소에 대해 환경 오염 물질 배출 규제(수은, 비소 등)를 2년간 유예,
- 노후된 석탄 발전소의 운영 연장 및 재가동,
- 연방 토지에서 석탄 채굴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인허가 체계 도입.
이 조치의 핵심은 “미국의 에너지 자립성과 전력망 안정”이라는 명분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뚜렷이 깔려 있습니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 중 하나인 러스트벨트 지역(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에는 여전히 석탄 산업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한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상 이는 낙후된 산업을 정치적으로 연명시키는 조치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4%를 차지하는 2위 배출국이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기후위기 대응에서의 책임이 막중한데, 이러한 후퇴는 단순한 국내 정책의 전환을 넘어, 국제적 기후 거버넌스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2. 중국, 두 얼굴의 기후 전략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으로, 2023년 기준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약 32%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와중에도 재생에너지 투자와 석탄 발전소 증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는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산업, 도시화 확대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을 이유로 들며, 이를 ‘에너지 안보’ 문제로 접근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 2023년에만 100GW 규모의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을 승인했으며, 이는 전세계 신구 석탄 발전소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 연안 도시들은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수요가 크지만, 내륙 지방에서는 여전히 석탄 중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 이를 국영 에너지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존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면서 석탄 기반 전력 시스템을 사실상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서도 석탄을 놓지 않는 이중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실용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누적 배출량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것입니다.
3. 기후외교의 후퇴와 국제질서의 균열
미국과 중국이 이렇게 탄소중립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일수록, 기후 외교는 약화되고 글로벌 거버넌스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수입 제품에 대해 '기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탄소중립을 외면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압박 수단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이제는 환경 차원을 넘어, 무역·외교·안보 문제와 직결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퇴보는 단순한 배출량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은 세계 기술표준과 정책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국가들이기에, 그들의 선택이 나머지 국가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기준점’이 되기 쉽습니다.
4. 거인의 후퇴 속, 작은 나라들의 분투
세계 최대 배출국들이 이렇게 뒷걸음질치는 사이, 몇몇 소규모 국가들은 오히려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 코스타리카: 전체 전력의 약 98%를 수력, 태양광, 지열 등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탄소세를 일찍부터 도입해 삼림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실현했습니다.
- 덴마크: 2030년까지 전체 배출량의 70% 감축을 목표로 하며, 풍력에너지 비중을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특히,'에너지섬' 프로젝트를 통해 주변국과의 공동 전력망 구축까지 도모하고 있습니다.
- 노르웨이: 2024년 기준 신차 판매의 90% 이상이 전기차이며. 강력한 보조금과 인프라 정책으로 교통 분야 탈탄소화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 에스토니아: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 부탄: 헌법에 산림 보존을 명시해 탄소흡수량이 배출량을 초과하는 나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정치적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정책 실험실로서 기능하며 기후 정책의 ‘선례’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5. 작은 불빛이 방향을 밝힌다
“큰 나라가 안 하니 작은 나라가 해도 무슨 소용이냐”는 냉소는 쉽게 들리지만, 이는 너무 단순한 계산입니다.
첫째, 기후 변화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배출이 해수면 상승, 폭염, 홍수로 이어져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모든 국가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둘째, 작은 나라들의 실험이 표준이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스웨덴의 탄소세 모델은 OECD 국가들의 참고 모델이 되었고, 뉴질랜드의 농업 탄소 배출 과세는 유럽연합에 도입 압력을 주었습니다.
셋째, 탄소중립은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경제·보건·기술·국방 등 모든 정책 영역을 통합하는 전략적 아젠다입니다. 이 흐름을 선도한 국가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마무리: 기후 위기의 시대, 리더십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미국과 중국, 두 거인의 퇴보는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탄소중립을 향한 작지만 진지한 발걸음들이 모여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기후 리더십은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작은 나라들의 단단한 실천,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나아가고자 하는 시민들의 선택이 모이면, 우리는 충분히 더 나은 방향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시대, 진짜 리더십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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