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이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BMW는 고유의 방식으로 이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바로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i 시리즈’를 별도로 운영하는 전략이다. i3, i4, i5, i7 등으로 구성된 이 라인업은 단순히 내연기관 모델에 전기 모터를 얹은 것이 아니라, 전기차만의 정체성을 위한 브랜딩 전략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i5는 5시리즈 전기차 아닌가? 그럼 그냥 ‘5시리즈 EV’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매우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BMW는 왜 전기차 라인업에 독립된 네이밍 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걸까? 이 글에서는 그 전략의 배경과 의미를 해석해 본다.
i 시리즈는 브랜드 정체성을 분리하려는 시도였다
BMW는 이미 2013년, 최초의 순수 전기차인 초기형 i3를 통해 i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카본 파이버 차체, 미래형 실내 구성, 도심형 전기차로서의 정체성을 갖춘 이 차량은 기존 BMW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적 철학을 실험하는 플랫폼이었다.
당시 함께 출시된 i8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이지만 디자인은 거의 콘셉트카에 가까웠다. 이처럼 ‘i’는 단순히 파워트레인의 차이를 넘어서 BMW가 정의하는 미래의 모빌리티 방향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철학은 이후 출시된 i4, i5, i7로 확장되며, 내연기관 모델과 디자인은 공유하되, 정체성은 구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
왜 i5는 5시리즈 EV가 아닌가?
i5는 외형상 G60 5시리즈와 매우 닮아있다. 같은 플랫폼(CLAR)에서 파생되었고, 실내 인테리어 구성도 유사하다. 하지만 BMW는 이 모델을 굳이 ‘i5’로 명명하며 5시리즈와는 다른 모델처럼 구분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전기차만의 독립 브랜드 정체성 확보
전기차가 기존 모델의 파생형처럼 보이면 기술적 진보나 미래성이 약해 보인다. ‘i5’라는 명칭은 소비자에게 “이건 단순한 전동화 모델이 아니라, BMW가 미래를 위해 새롭게 설계한 전기차다”라는 인식을 준다. - 디자인은 비슷해도, 체감은 다르다
같은 차체를 공유해도, 주행 질감·정숙성·충전 시스템·디지털 UX는 완전히 다르다. 이 차이를 이름에서부터 구분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각 i 시리즈가 의미하는 포지셔닝은?
BMW의 i 시리즈는 단순히 기존 내연기관 모델을 전기차로 치환한 것이 아니라, 각 세그먼트별 전동화 전략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숫자 체계를 공유하면서도, 각 모델은 BMW가 정의한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기준을 상징하고 있다.
i3: BMW 전기차 철학의 출발점,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13년 첫 등장한 i3는 BMW의 전기차 철학이 집약된 혁신 실험 모델이었다.
카본 파이버 강화 플라스틱(CFRP) 바디, 독립된 알루미늄 섀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고민한 경량화 전략 등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단순한 소형 전기차가 아닌, BMW가 미래 도시형 모빌리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비전을 담았다.
현재 단종되었지만, i3의 이름은 Neue Klasse 플랫폼 기반의 전기 3시리즈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즉, i3는 과거와 미래의 연결 고리이자 BMW 전기차의 상징적 기점이다.
i4: ‘운전의 즐거움’을 전기차에 이식한 모델
i4는 4시리즈 그란쿠페(G26)를 기반으로 한 중형 프리미엄 전기 세단이다.
주된 경쟁상대는 테슬라 모델 3와 폴스타 2. 하지만 BMW는 단순히 가격이나 제원이 아닌, 주행 감성과 조향, 정숙성 등 전통적인 BMW의 강점을 전기차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특히 고성능 M 퍼포먼스 모델인 i4 M50은 전기차로도 BMW의 ‘달리는 재미’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i4는 전기차 시장에서 BMW의 정체성을 지키는 ‘기준점’ 역할을 한다.
i5: 세단의 균형미를 지닌 전동화 전략의 핵심
i5는 G60 5시리즈의 전기차 버전으로, 비즈니스 세단 시장에서 BMW의 전동화 전략의 중심에 있다.
외형은 5시리즈와 거의 동일하지만, 전기 구동계, 전자식 서스펜션, 디지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에서 전기차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특히 i5 eDrive40과 i5 M60 xDrive는 각각 고효율과 고성능을 대표하며, 다양한 소비자층을 포용한다.
i5는 내연기관과 전기차가 공존하는 과도기 시장에서 BMW의 이중 플랫폼 전략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i7: 럭셔리의 미래를 전기로 구현하다
i7은 7시리즈(G70)의 전기차 모델로, BMW 럭셔리 전략의 정점에 해당한다.
벤츠 EQS, 아우디 A8 e-tron과 직접 경쟁하며, 고급스러움·정숙성·기술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플래그십 전기 세단이다.
리어 엔터테인먼트 스크린(31.3인치 BMW Theatre Screen), 향상된 반자율주행 기능, 고출력 듀얼 모터 등은 전동화 시대의 플래그십 기준을 재정의하려는 BMW의 야심을 반영한다.
i7은 단순한 파워트레인의 전환을 넘어, BMW가 럭셔리 브랜드로서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선언적 모델이다.
경쟁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 벤츠는 EQ 시리즈(EQE, EQS 등)로 전기차를 분리했지만, 2025년 이후 EQ 네이밍을 중단하고 기존 이름으로 회귀할 예정이다.
- 아우디는 A6 e-tron, Q6 e-tron처럼 ‘전기차임을 암시하는 접미사’를 붙인다.
- 현대차는 IONIQ 브랜드를 따로 운영하며, 전기차만의 세계관을 구축한다.
BMW는 ‘i 시리즈’라는 독립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기존 숫자 명명 체계를 활용해 브랜드 전통과 미래 전략을 동시에 담아내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소비자의 혼란은 없는가?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i5와 5시리즈를 사실상 ‘같은 차’로 본다. 디자인이 거의 같고, 실내 UX도 비슷하다면 왜 이름은 다른가?
또 과거의 i3와 향후 나올 Neue Klasse 기반의 i3는 이름만 같지, 성격은 전혀 다르다. 이름은 같지만 실체는 다른 차량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가 실제 구매를 고려할 때 발생한다. BMW 전시장을 방문해 i5와 520i를 비교한다고 해보자. 외형은 비슷한데, 한쪽은 전기차고 다른 쪽은 내연기관이다. 하지만 판매사원조차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같은 차 아닌가요?” 또는 “왜 이름만 바뀌었나요?”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또한 모델 간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은 브랜드 신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i 시리즈는 전기차’라는 인식은 있지만, 그 안에서도 플랫폼, 세대, 기술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BMW는 전기차 브랜드 정체성을 제대로 잡은 걸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BMW가 지금처럼 두 체계(CLAR과 Neue Klasse)를 동시에 운영하면서도, ‘i 시리즈’의 브랜드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기술이 아닌 정보의 복잡성 때문에 구매를 망설일 수 있다.
결론: i 시리즈는 BMW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포지셔닝이다
BMW는 단순히 내연기관 모델을 전기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i 시리즈’를 통해 전기차만의 브랜드 정체성과 기술 철학을 따로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BMW가 전기차 시장에서도 고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i’라는 이름은 BMW가 미래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감성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실험이자 선언이다. 혼란은 있겠지만, 그것은 변화의 불가피한 일부일지도 모른다.
다음 편 예고: 이름이 달라지면 구조도 달라질까?
‘i5’는 단지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다. BMW는 i 시리즈를 구성하면서 두 가지 플랫폼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CLAR vs Neue Klasse’라는 플랫폼 이원화 구조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제조 효율성·소비자 혼란의 문제를 산업적 시각에서 분석해볼 예정이다.
[BMW 전기차 전략 시리즈 #2 – “BMW는 왜 두 개의 플랫폼을 유지하는가?”]
곧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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