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치로 드러난 충격: 현대차의 수출이 '증발'했다
2025년 상반기, 현대자동차의 미국 수출 실적이 극적으로 하락했습니다. 겉보기에 이 숫자는 일시적인 하락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폭은 상상 이상입니다. 단 5개월 사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7,156대. 불과 작년 같은 기간에는 약 59,705대를 수출했는데, 무려 88%가 줄었습니다.
이처럼 극적인 하락은 단순한 시장 수요 문제가 아닌, 공급 구조와 전략의 변화가 작동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내연기관차 포함 전체 자동차 수출액도 27.1% 감소했으며, 미국은 전체 EV 수출 중 36%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입니다.
2. 전략이 바뀌었다: ‘한국 생산 → 미국 생산’으로 이동
수출 급감은 단순히 수요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현대차는 현재 완전히 다른 공급망 전략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2025년 본격 가동된 조지아주 HMGMA 메타플랜트는 그 중심입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이오닉 5, EV9 등은 한국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조립되고, 현지에서 판매되는 구조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수출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한국 중심 생산 체계가 해체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3. 그런데 판매도 줄고 있다: 공급만 옮긴다고 끝이 아니다
현지 생산으로 전략을 바꿨지만, 미국 내 판매량도 줄고 있습니다. 2025년 1~6월 현대·기아 EV 판매량은 44,555대, 전년 대비 28% 감소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EV 시장은 5.2% 성장했습니다. 즉,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현대차만 역성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생산 이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며, 브랜드 포지셔닝, 유통 구조, 보조금 혜택 정렬까지 총체적 전략 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4. 관세와 IRA: 구조를 흔든 두 개의 정책 폭탄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을 바꾸게 만든 두 가지 강력한 외부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고율 관세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입니다.
첫째, 관세.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생산 차량은 미국 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둘째, IRA. 미국 내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 세액공제를 적용합니다. 한국에서 만든 EV는 세제 혜택이 아예 배제되어 소비자 선택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현대차는 이중 압박을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이번 수출 급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5. 한국이 감당하는 대가: 산업·고용·지역경제까지 흔들린다
글로벌 전략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 그림자에는 한국이 떠안고 있는 구조적 리스크가 숨어 있습니다.
- 국내 공장 가동률 저하: 울산, 아산, 전주 등 생산라인 축소
- 부품 생태계 타격: 수출 부품업체 매출 감소 및 구조조정
- 고용 불안정성 확대: 하청·중소기업 종사자까지 고용 불안
- 지방 재정 악화: 지역 경제 축소, 부동산 경기 둔화
이는 단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 전략 차원의 사안입니다.
6. 단순한 수출 감소가 아니다: 산업 구조의 리셋
이번 변화는 수출 실적의 하락이 아니라 생산·공급 체계 자체의 리셋이라 보는 게 정확합니다.
수출 중심이던 구조는 현지화 중심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는 노동시장, 투자, 기술 이전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은 자동차 생산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무게중심도 바뀔 수 있습니다.
7. 우리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
기업은 변화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이제 국가와 사회가 어떤 질문을 던질지가 중요합니다.
- 이 전략은 한국 경제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가?
- 정부는 산업 구조 전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 지역 고용과 부품 생태계를 유지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는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며, 향후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산업에도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이슈입니다.
8. 결론: 숫자보다 구조를 보라
‘88% 감소’는 숫자가 아니라 신호입니다. 변화의 배경을 읽지 못한다면, 다음 타자는 한국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수출 통계를 분석할 때가 아니라, 그 통계가 말해주는 미래의 산업 방향을 읽어야 할 시점이다. 현대차는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와 정책도 그 전략의 빈틈을 메우고,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을 복구하기 위한 긴 호흡의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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